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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통로 - 강영우 박사 간증
등록일:2016-01-23/작성자:이기성/조회:603

올해 안디옥 교회 표어인 '축복의 통로가 되라' 를 생각하면서 그처럼 살다간 믿음의 선배 강영우박사님의 간증을 읽고 도전을 받으며 나눕니다. 그분은 1944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하여 중학교 재학 중 실명한후 연세대 교육학전공후  피츠버그 대학에서 특수교육학박사 취득,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 백악관 장애위원회 차관보로 일하시고 2012년 별세하셨습니다. 다음은 그의 간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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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학 중 좋은 대학으로 시카고 대학이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은 노벨상의 왕국입니다.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습니다. 1929년까지 그곳은 별 볼일 없는 2류 대학이었었는데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총장이 되면서 학생들에게 인생을 걸고 따라가야 할 만한 스승을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그레이트북 100권을 교양으로 읽어야 졸업이 가능하도록 하고, 그 중에서 학생들이 인생을 바쳐 따를 수 있는 역할 모델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나왔고 결국 노벨상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역할모델이란 멘토링 즉, 스승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도 나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32대 루스벨트 대통령은 26대 프랭클린 대통령을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38살에 대통령후보가 되기까지 승승장구를 했지만 루스벨트는 낙선을 하고 소아마비가 걸려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의 정치인생은 끝났다고 이야기 할 때 그는 또 하나의 역할모델을 찾았습니다. 바로 헬렌 켈러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보기에 자기가 그녀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갖고 있던 한 가지 때문에 자기의 역할모델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3중장애를 가지고 명문 래드클리프칼리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강의 내용을 보지도 듣지도 자기의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곳을 졸업하였던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과연 그가 두 다리에 힘을 얻어 서서 강연하는 것이 헬렌 켈러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졸업했던 것보다 더 힘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으며, 그 후 7년 동안 재활치료에 집중하여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루스벨트는 후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돌아 가셨고,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그는 아버지의 역할 모델로 목사이자 변호사였던 위드라 윌슨대통령을 삼았습니다. 고아 출신 후버대통령도 위드라 윌슨을 아버지의 역할모델로 삼고 살았다고 합니다. 

교육에서 역할 모델을 찾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저의 역할 모델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모태교인으로 태어났고, 주일학교 다닐 때 내 인생은 고난과 고통이 없는 탄탄대로일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3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14살 때 축구공을 눈에 맞아 망막박리가 되어 병원에서 2년간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장님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8시간 만에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고쳐주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조용기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대조동 순복음교회에서 함께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생계를 책임지던 누나마저 과로로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난을 겪게 하시고 믿음으로 견디려고 노력하는 저에게 아무 일도 해 주지 않으시는지 하나님께 강하게 불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해 주셔서 동생들과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한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눈물의 기도를 하였으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야 한다 
고난과 역경은 기회와 축복이다” 


신앙의 갈등이 생기고 급기야 우리 3명은 서로 각자 헤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 당시 하나님께서 눈을 안 고쳐주신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 눈을 고쳐주셨다면 나는 누나와 같이 공장에서 일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6년 후 제가 연세대학교를 들어갔을 때 두 동생과 만나 다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지만 지금은 동생들을 초청해서 이곳에서 잘 살고 모든 자녀들이 다 잘되는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 축복인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1972년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장애인으로서 미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돈200불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부시 대통령과 우리 둘째 아들의 역사 선생님인 토마스 라이언 선생님이 나를 부러워한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했고, 또 명문가를 이룬 것을 보며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둘째는 이제 28살인데 법학박사로 아주 높은 상원의원의 최연소고문변호사이고 가장 촉망 받는 보좌관에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하나님의 복 주시기 위한 축복의 도구다” 라는 감사로 살기 시작하니까 이 실명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퍼지는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저희 가족 모두가 저의 실명으로 인해 훌륭한 사람들로 자라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저의 아내는 저 때문에 장애교육을 공부해서 그 관련분야의 전문가가 되었고, 큰 아들은 나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안과의사가 되었으며, 작은 아들은 나의 연설문 쓰는 것을 도와주다가 글을 잘 쓰게 되었고, 긍휼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명은 우리 가족들에게도 큰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책을 썼을 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편지로 “당신의 책에는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고결한 가치가 들어있는데, 첫째는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절망적 한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졌고, 어려운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있었으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들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앙은 가장 감동을 주는 내용이었고, 롬8:28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의 가장 큰 본보기가 되는 케이스다”라고 쓰셨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저절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조건을 찾으시고 어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영광으로 가는 자양분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야 합니다. 역할 모델을 가지자.” 
“고난과 역경은 기회와 축복이다.” 
믿음으로 승리하고 고난을 긍정적인 자산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2005년 9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온누리교회> 

 한줄의견[0]
 
먼저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드신 장로님 수고 많이 하였읍니다 김복원 2011-04-16
하나님의 향기로 가득한 새 홈페이지 축하합니다. 송해일 2011-04-14
107 축복의 통로 - 강영우 박사 간증 이기성 201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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